지난 4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의료민영화’ 추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일부 시민단체는 의료민영화 반대 운동을 펼치기도 하는 등 여러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의료민영화란 정확히 무엇일까? 자세히 알아보기에 앞서, 용인삼계고 학생들 약 70명을 대상으로 현재 한국의 의료 시장과 의료민영화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한 설문을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구조와 시스템에 대한 만족도는 전반적으로 높은 것으로 보였으나, 의료 수가는 환자에게 부담이 되는 수준이라고 답한 인원이 더 많았다. 전반적으로 의료민영화/영리병원 도입이 주는 영향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앞섰고, 과반수 이상이 의료민영화 시행을 반대했다.
의료민영화란 무엇인가?
의료민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의료기관의 민영화 (의료공급의 민영화)이다. 의료 공급의 민영화란, 의료 공급 부분을 국가에서 최소한만 규제하거나 규제하지 않고 민간에 맡기는 것이다.
인지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 병원의 민영화는 이미 이루어진 상태이다.
병원이나 약국을 개원하는 의사/약사는 국가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의료기관은 모두 비영리법인이어야 한다. 비영리/영리를 구분하는 기준은 상업적 투자 여부에 있다.
비영리법인은 상업적 투자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수익 창출의 주체인 의사/약사가 아니라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없다. 때문에 현재 의료민영화 담론의 논점은 ‘영리병원’에 있다. 영리병원 허용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러한 법을 규제로 받아들이고, 의료 면허를 소지하지 않은 일반인도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한다.
두 번째는 의료보험의 민영화 (의료수요의 민영화)이다. 의료수요의 민영화란, 의료보험 부분을 국가에서 규제하지 않고 민간에 맡기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모든 국민과 의료기관이 국가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의료비가 적게 든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만큼 의료 서비스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의료보험의 민영화를 추진하면, 보험 회사끼리 의료 서비스 질에 대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곧 병원에서는 보험 회사가 요구하는 기준만큼의 의료 서비스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의료 원가 자체가 지금보다 높아지게 된다. 또 국가 보험과 달리 지병이나 사고 이력이 있는 사람은 할증이 붙어 보험 수가가 더 높아질 것이다.
이처럼 의료 민영화에는 장점과 단점이 공존한다. 이제 의료 민영화의 주요 장점과 단점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의료민영화의 장점
의료민영화를 찬성하는 진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의료민영화가 보건의료 체계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장도구주의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정부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시장에 맡기는 것이 보건의료 외의 분야에서 효율성을 가져오는 데에 성공적이었으므로, 의료민영화 또한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으로 많은 장점을 가져올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자유를 보장하면 번영이 뒤따를 것이다’라는 신념으로부터 민영화가 보건의료분야에서도 가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장근본주의이다.
세계적으로 의료 수가 자체가 높아져 현재 체계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민영화에 대한 제한을 느슨하게 하면 오히려 의료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고 의료 수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이런 진영의 구분 없이도, 의료민영화는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 일자리 창출, 공급자 간의 경쟁을 통한 소비자 만족도 증가 등의 장점을 가진다.
의료민영화의 문제점
의료민영화를 찬성하는 자들은 민영화가 경제적 발전에 이롭다고 하지만, 영리만 추구하다 보면 고용이 줄어들고, 의료 서비스의 질이 오히려 떨어지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또 영리병원의 우세에 따라 기존 병원이 문을 닫을 수 있는 등의 문제점도 있다. 의료 서비스의 질적인 면에서 봐도 의료 민영화가 정답은 아니다.
의료 서비스의 질적 향상은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그 서비스를 누릴 수 있을 때에 의미가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어떤 병원을 가더라도 모두 비슷한 가격 선에서 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이는 법에서 ‘당연지정제’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인데,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 적용을 거부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의료민영화가 시행되면 당연지정제가 완화되거나 폐지되고, 민간 의료보험이 활성화될 것인데, 민간 의료보험이 허용되면 비싼 돈을 내고 그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의료 서비스에는 분명한 차이가 생길 것이다.
비싼 의료비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영리병원을 찾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비영리병원에 몰리게 되면서 결국 일반 서민들이 누리는 병원의 의료 서비스는 더 질이 낮아질 수 있다.
또한 최근 전망이 밝다고 여겨지는 디지털 헬스케어와 같은 고차원적인 기술이 요구되는 의료기기는 초기 자본만 20억 이상이 필요한데, 국가가 아닌 투자로 이런 사업을 유치하게 된다면 같은 맥락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처럼 의료민영화는 일부만 보면 효율적인 시스템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사회적 양극화를 국민들의 생명, 건강 부분까지 확대시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다른 분야와 달리 의료 분야에서 특히 이러한 양극화에 대한 우려를 표할까? 더 자세한 이해를 돕기 위해 <노동법률>에서 유지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하여 첨부한다.
Q. 보건의료업이 갖는 특수성은 무엇일까. 다른 분야 근로관계와 차이가 있는지?
A. 첫 번째로 국민 건강과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시장 논리만 적용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란 점이다.
병원의 모든 근로자들은 어떤 직책에 있던지 환자 생명과 직·간접적 연관이 있다. 예를 들어 병원 전기시설은 3초만 중단돼도 인공호흡기가 멈춘다.
또 훈련돼 있지 않은 청소부가 청소하다 바늘에 찔 려 감염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가 병원 사업장 비정규직이나 파견 확대를 막기 위해 싸우는 이유 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종은 잘게 나누면 70가지인데, 이렇게 쪼개서 어떻게 해서든지 파견으로 돌리 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두 번째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인건비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보건의료산업의 노사관계에서는 시설이나 장비보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관건이다. 근로자 측은 인력 확충을 요구하고, 사용자 측은 인건비가 과도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명한다.
비중이 가장 높은 인건비 를 낮추려다 보니 열악해지고, 과잉진료로 이어지기 쉽다. 인력 부족으로 근로조건이 열악해 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교육계처럼 임 금 평등화·체계화가 필요하다.
어디서 일해도 같은 임금을 준다면 경쟁 때문에 근로자가 자주 이직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의료민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안
정리하자면, 의료민영화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의 순기능인 경쟁을 통한 수요와 공급의 조절을 통한 경제적 효율성이다.
또 이를 통해 우수한 장비와 인력을 유치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다만, 전반적인 의료비 인상으로 국민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특히 이런 부분이 의료민영화 시행은 가진 자들만을 위한 정책이 될 것이고, 의료 산업 자체가 상류층의 영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할 것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다.
앞서 서술했듯 현재 공보험을 시행하는 한국에도 여러 제도적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민영화를 시행한다고 해서 꼭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공영화와 민영화는 간단하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현재 의료 체계는 나라마다 다르고, 때문에 하나의 극단적 예시를 보고 민영화를 무조건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옳은 사고방식이 아니다.
우리는 올바른 관점으로 정부의 행보를 지켜보고 사회적 논의에 활발하게 참여해야 하고, 정부는 명확하고 조심스럽게 국민과 소통하면서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